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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작년쯤 인가?

"뮤직태그"에서, 타이타닉 주제곡을 원하는 분이 계셔서
타이타닉에 관해서,
오래전에 포스팅한게 있어서, 이걸, 소개를 해 드린적이 있는데..

혹, 못 보신 분이 계시면
재미 삼아 한 번 보셔요..!

그리고, 휴일 저녁
영화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랑들 나누시구요...^^

*


 
Nearer My God To Thee (내 주를 가까이)


유선 방송에서 타이타닉을 하네!
언제 봐도 아름다운 영화다..!
배가 침몰할 당시 그래도 끝까지 바이올린 연주를하는 "왈레스 하틀리"

실제로는 배가 침몰할 당시 그들이 무슨 연주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선호곡은 이브닝풍의 왈츠와 교회힘이었으며,
평상시 하틀리는 "만약에 우리가 탄 배가 가라앉는다면
'신 그대 가까이' 혹은 '지난시절의 구세주인 신이여'를 연주할 것"
이라고 자랑하곤 하였다. 


타이타닉이 낳은 영웅

고향인 콜른에는 3미터 높이의 동상이 세워졌으며,
장례식에는 4만명의 인파가 몰려왔다.

*



감독 : 제임스 카메론 (James Cameron)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스렛 (Kate Winslet)
(Leonardo Di Caprio)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

단서를 안고 사라진 장본인!
타이타닉 침몰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뉴욕의 상류층에서는
당시 "억만장자들의 선장"으로 알려진 스미스 선장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만찬을 개최하였다.

그는 당시 대서양 횡단 항로에 있어서 가장 경험이 많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재치있는 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스미스 선장이 왜 한밤중에 거대한 타이타닉호를
빙하더미의 바다 사이로 고속 질주시켰을까? 

스미스는 1850년에 영국 '스테포드쉬어'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형이 조정하는 배로 세계일주를 하곤 하였다.

1880년에는 타이타닉의 제조사인 '화이트 스타 라인'에 입사한 후,
타이타닉의 자매선인 '올림픽'을 포함한
많은 신규선박의 처녀운항을 관장해온 경력을 지니고 있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스미스 선장은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조종실에서 유유히 배와 함께 가라앉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배가 침몰하기 직전에 바다에 뛰어 들어,
주위에 헤엄치는 생존자들을 구명보트로 인도하였으나,
자신은 보트에 올라 타지 않았다는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많다.

당시 부인과 딸 하나를 두고 있던 스미스는
타이타닉 항해 이후 곧바로 은퇴할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한 친척은 "어떻게 생각하면 차라리,
역사적인 배와 함께 가라 앉은 것이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언급하였다.



프레데릭 플리트 선원

빙하를 처음으로 목격한 사나이!
선원 플리트는 1912년 4월 14일 저녁에,
타이타닉호 선상 15미터위에 위치한 전망타워에서
항해망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망원경은 출발항인 사우스햄톤에서 실리지 않은 상태였다.

자신의 교대시간의 마지막 한시간을 남겨두고,
선체 500미터 정면에 대형 빙하를 목격하였다.

곧바로 조정실에 알린 결과 선박은 급턴을 하여
작은 진동과 함께 소량의 얼음이 갑판 위에 흩어졌을 뿐,
큰 고비를 면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시간 후에 플리트 선원은
구명보트를 저으며 여성들을 구조하여야만 했다.

플리트는 참변이후 1936년까지 배를 탔으며,
말년에는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신문배달을,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며 보냈다. 

무척 외로움을 타는 성격으로 1965년에 부인이 사망하자,
얼마 안되어 마당 빨래줄에 목매달아 자살하였다.




벤자민 구겐하임

멋지게 간 억만장자!

스위스에서 이민 온 철강사업의 억만장자
메이어 구겐하임의 7남중 6번째인 벤자민은

현지처인 프랑스 가수 레오틴 오바와 함께
쉐르브르그에서 타이타닉호에 탑승하였다.  

구겐하임은 타이타닉호의 운명이 확인되자,
하인과 자기 방으로  향한 뒤 턱시도로 갈아 입는다.

"뉴욕의 부인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전해달라"며
선원에게 구명조끼를 거부한 구겐하임은
그 자리에서 현지처와 하인이 무사히 구명보트에 탄 것을 확인한 뒤,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예복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구겐하임 부인은 남편없이 몇 개월씩 보내는데 익숙해져 있었으며,
호화생활 도중에 투자실패로 거액을 날린 것으로 알려진다.

구겐하임의 명예로운 죽음은 일가에게 도움도 되었겠지만,
3자녀에게 소액의 재산만을 남겨,
나중에 딸이 불평할 정도였다고 한다.



제이 블루스 이즈메이

참사의 장본인!

영화에서 타이타닉호 소유회사 이사인 이즈메이가
디너 테이블의 내프킨에 항해의 첫 지시계획을 그린 것 처럼,
과연 진짜로 홍보효과를 위해
배를 전속시키도록 명령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49세의 그가 배에 가득찬 승객과 하인과 비서와 그의 명예를 놔둔 채
마지막 구명보트로 탈출했다는 사실이다. 

"갑판위에 남은 사람이 더 이상 없었다"고 변명한 그는,
구명선 '카파시아'호의 남은 항해에서 계속 고립되어 있었다.

차후 범죄혐의는 벗어났지만,
언론에서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고,
당시의 상류층 남성들이 가입해있던 존엄한 런던회에서도
심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1913년에는 아버지에게서 상속받은
'화이트 스타 라인'의 회장직을 내놓은 후,
미국부인 쥴리아 프로렌스와 함께 아일랜드 서부에서 요양하다
1937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시도 & 스트라우스

같이 가기로 선택한 부부!

유명한 자선가이자 뉴욕 맨하탄 한복판의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한
스트라우스 부인은 구명보트에 탈 권유를 두번이나 뿌리치고
남편과 마지막 순간을 같이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6명의 자녀와 친지들도
이 선택에 대해 놀라지는 않았다.

둘은 서로 생일잔치도 항상 같이 치루는가 하면,
헤어져있을 때에도 매일 편지를 교환할 정도였기에....

타이타닉이 가라 앉기 시작할 때
선원들이 구명보트에 탈 것을 권유하자, 대신 하인을 태우고는,
"이제 이것도 필요 없을 것" 이라며
입고있던 모피코트마저 건네주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두번째 보트에 강제로 태워진 후, 남편이 물러서자,
보트에서 뿌리치고 나와
67세의 남편과 마지막으로 포옹하는 장면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었다.

뉴욕 브론크스 묘지의 돌담에는
"물은 사랑을 채울 수 없지만, 사랑을 죽이지는 못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마가렛 몰리 브라운

영화의 상부갑판에서 유일하게 잭의 편이 되어주는
콜로라도 백만장자의 부인 마가렛 몰리 브라운.

미중부의 천진난만한 성격과, 하루아침에 떼돈을 번 새내기로서
그녀 역시 귀부인층으로부터 따돌림을 받곤 했다.  

말 그대로 남편이 서부에서 금덩어리를 발견하였기 때문.

그 외에도 타이타닉에는
당시 미국 자유의 종이 울려 퍼지는 필라델피아의 상류층 인파가
대거 타고 있었다.

하지만 이중에서, 운항 계획을 마지막 순간에 바꾸어
승선하지 않은 억만장자가 있었는데,

바로 대서양 최고의 호화 운항선을 꿈꾼 유명한 미국인 사업가
'제이 피어포인트 모겐'

우연케도 타이타닉의 모회사인 '화이트 스타 라인'사의 주주였으며,
영화에서는 마침, 이 사람의 특실에
로즈, 루스, 칼이 투숙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


운항 계획을 마지막 순간에 바꾸어
승선하지 않은 억만장자가 있었는데,

바로 대서양 최고의 호화 운항선을 꿈꾼 유명한 미국인 사업가
'제이 피어포인트 모겐'.

우연케도 타이타닉의 모회사인 '화이트 스타 라인'사의 주주였으며,
영화에서는 마침, 이 사람의 특실에
로즈, 루스, 칼이 투숙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랑의 타이타닉

그럼, 88년전에 과연 잭과 로즈가 존재했을까?
영국 워세스터에서 결혼하여 상점을 운영하는 39세 새뮤얼 몰리와
19살난 그의 종업원 케이트 필립스는
마샬부부라는 가명으로 타이타닉에 승선한다 

둘은 선상에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고,
신대륙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약속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로즈의 경우와 같이,
필립스는 배와 함께 가라앉은 몰리의 추억과
그가 선물한 다이아 목걸이만 손에 쥔 채 이 참사에서 살아 남는다. 

그리고 9개월 후 탄생한 딸은 왠지,
자신이 선상에서 첫 생명을 얻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전하는 이야기는,
신혼중이었던 대니엘 마빈과 메리 마가렛 (모두 18세)는
신혼여행에서 돌아가는 마지막 길을 바다 위에서 보내기 위해
타이타닉호 표를 샀다.

그리고 배가 가라 앉던 순간 마빈은
당시 임신중인 것도 몰랐던 메리를 구명보트에 태우며
"괜찮아, 먼저 가있어"라고 유유히 말했다고 전해진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을까?  
타이타닉이 Southampton항을 떠날 때
충돌의 위험 말고도 또 다른 나쁜 징조가 있었다.

바다를 향해 떠나가는 타이타닉의 주변에
유난히 많은 갈매기 떼가 몰려들어
타이타닉이 완전히 항구를 떠날 때까지 쫓아 갔다고 한다.


누가 실제 인물이었을까?

잭과 로즈, 로즈의 어머니, 칼과 그의 하인 등
몇몇 핵심 주인공을 빼놓고는
영화에 등장하는 상류층과 승무원 대부분이
실제로 타이타닉호에 탑승하였던 인물들이다.

당시 대서양을 사이에 둔 서구사회의 내노라하는 유명인들이
입맛을 다시며 기다리던 배였고,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승무원 명부로 이들을 영상화하기란
그나마 쉬운 편이었다.

하지만, 당시 여행의 등록절차가 완벽 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가명으로 여행한 관계로
이후 사망자 신원확인에 상당한 애로를 겪었듯이,
정확한 탑승자 명부는 알 길이 없다. 

카메론 팀의 노력 어린 조사와 분석 덕분에,
참사후의 실제 증언기록을 보더라도,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같은 처지에 처했을
실제의 인물들이 꽤나 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잭이 정말 실존인물이었을까?

카메론 감독도 영화대목 제작 후에야 안 사실이지만
실제 타이타닉호 승객 등록명부에는
"제이 더슨"이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자동차


영화상에서 잭과 로즈가 안에서 수증기를 뿜으며
열열하게 사랑을 나눈 자동차는
실제로 타이타닉호에 탑재된 것이었다.

바로 필라델피아의 윌리엄 카터씨가
유럽으로부터 주문한 25마력 르노였고
침몰 후에는 무려 5,000불의 보험금을 타냈다고 한다 



자유의 파티


실제 타이타닉호에는 밤마다 특틍실에서는
화려하고 웅장한 파티가 연일 계속되었고
또 영화의 중간부분 두 주인공이
싸구려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던 그 3등칸 홀에서도
마지막날 4월12일 파티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카메론 감독은 이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3등실만의 서민적인 자유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대양의 심장

영화에서 칼이 로즈에게 약혼선물로 선사한
전통 깊은 "바다의 심장" 이라는 이름의 블루 다이아 목걸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를 위한 모조품으로서
그 유명한 Hope Diamond와 비슷한 외형으로 만들어진 것.

하지만, Rubaiyat of Omar Khayyam 의 카피본으로
무려 1000개의 실제보석이 덮인 것이
아직도 타이타닉 내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참고로, 당시 1등실에 탄 사람들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당시 환율로 600,000,000불에 달한다!



1523명의 사망자

사망자 회수를 위하여
참사 2일 후에첫 번째 탐색선이 사고현장으로 갔다.
기서 306구의 시신을 찾았으며
1등실 시신들은 가족의 손으로 돌아가고

심하게 손상을 입어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던
시신 116구는 묵직한 부대에 넣어 꿰맨 다음에
갑판 위에서 장례식을 치른 후 검은 바다와 함께 했다.


보물선 타이타닉  

타이타닉호에는 28개의 초호화 초특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영화에서 로즈가 나열하다시피,이 부문을 애용하는 승객은
당시 서구사회에서 가장 권력과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이와 같은 등급을 이용하는 300여명의 특급승객은
차마 배가 가라앉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객실에 거의 모든 것을 두고 나온 상태였다.

거기에다 어떤 승객은 보통 여행 길에
금고 자체를 화물로 싣고 다니던 사실을 감안할 때,
타이타닉 잔해에는 어마어마한 보물이 아직도 잠들어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얼음 칵테일

청문회의 증언에 따르면,
타이타닉이 빙산에 충돌해서
빙산의 조각들이 수도 없이 갑판 위에 떨어졌을 때
사람들이 기념으로 가지려고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음료수에 섞어서 먹으려고도 했다고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던
순진한 사람들이 벌였던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타이타닉 탑승자 생존율 (승무원 과 3등실 탑승객의 생존율이 낮다)



타이타닉의 참사는
피치 못할 시대적 성격과
짧은 순간에 많은 우연한 일들이 겹친 결과로 터진 비극으로 결론지워진다.

항로에 대한 결정,  통신이상,
비상대책의 미비,  구명보트 수,
특권층의 압도적 권위,  얼음바다,
달빛이 없던 깜깜한 밤하늘...

모두가 얼음바다 밑으로 1523명을 앗아간 원인이다. 

마지막으로 더할 것이 있다면,
이 배에는 무려 900명에 달하는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참사 통계상
3급승객 못지 않게 적은 이들의 생존율을 보면,
끝까지 맡겨진 책임에 생명을 바친 영웅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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